가을로 가득 찬 거리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해님은 따라 달려가는 택배 트럭의 기사님을 오늘은 따라가 봅니다.
코로나로 다니던 여행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오십이 다 된 나이에
들어갈 곳도
마땅찮아 중고 트럭 한 대를 사서 아파트 입구에 세워놓고 아내랑 채소 장사를 해보았지만 파는 것보다 시들어 버리는
게 더 많다보니 나중엔 물건 뗄 밑천마저 바닥이 나고 말았고 물러가는 봄처럼 아내는 식당으로 남편은 배달 한 건에 오백 원을 받는 조건으로 택배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네요.
무럭무럭 자라나는 쌍둥이 딸들을 위해서라도 약속하지 않아도 찾아온 새벽을 달려 나간 남편은 차를 타고 이동하기보다는
무거운 짐을 들고 골목골목을 걸어 다닐 수밖에 없는 이 달동네는 택배기사들도 다들 꺼리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가을을 얻으려 내어준 여름의 심술로 바람 한 점 없는 거리는 뜨겁기만
했지만 뭐든 일할 수 있다는 즐거움에 젖어 오늘도 홀몸 어르신들이 사는 집 수도꼭지 부속을 사서 고쳐주질 않나 고장 난 전등까지 갈아주는 소소한
일까지 해나가다 보니 "손가이버"라는
별명까지 얻게 되었답니다
“어이....슈퍼 아저씨 .. 오늘도 고생했어“
차 한 대 간신히 다닐 수 있는 골목 길가에 앉아있던 어르신 한
분이 슈퍼 아저씨라는 부르는 소리에 왜 수퍼 아저씨인지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아내가 매일 점심값과 담뱃값 하라며 만 원을 주거든요“
“그게 슈퍼 아저씨랑 무슨?“
"그돈에서 때늦은 점심을 사 먹으면 오천 원이 남잖아요“
“그건 담배 사셔야죠?”
“거기서 제가 슈퍼 아저씨로 불리게 된 거죠”
이일 시작하면서 담배 피울 시간이 없어 끊었다는 남편은 남은 오천 원으로 두부 한 모에 어묵 한 봉지와 새우깡하나라도
사서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게 불편하신 어르신들에게 나눠 드린 게 고맙다며
옥상이나 자투리땅에다 키운 고추나 가지 같은 갖은 채소들을 답례로 받아온
걸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어르신에게 나누어드리다 보니 이런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며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고 있는 남편은
“쉬이... 아내한테는
비밀이에요”
지나는 바람같이 싱긋이 웃어 보이며 먹을 뿌린 저녁을 달려나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아드님이
보내셨나 봐요? 여러 개 들어있는 과일 주스 같은데"
글자를 모르는 욕쟁이 할머니께서 두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이리저리
훎어보더니
"아들이 보냈나 보네….
우리 아들이 효자야, 효자"
그렇게 마지막 집을 돌고 나온 남편은 마중나온 바람과 지친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와 저녁밥을 먹고 있을 때 급하게 울리는 전화
“여보세요.. 네에?“ 다른 집에서 받아야 하는 물건인데 그만
주소를 잘못 봐 욕쟁이 할머니 집에 배달한 걸 안 남편이
다음 날 아침 허겁지겁 도착한 할머니 집 마루에는 상자 속에서 꺼내놓은
쥬스 병들이 너부르져 있었는데요
"시불알 놈 아침 댓바람부터 웬일이고? 이거 처먹고 싶어서
왔나?“
“그게 아니라...다른
집.....“
“얼렁 처먹고 가라“
남편은 그날 태어나 한병에 삼만원하는 주스를 처음 마셔보았지만 얼렁덜렁
어우러지며 사는 맛 또한 세상 최고의 맛 아니냐며 하늘에 매달려 있던 해님이 먼저 퇴근할 때까지 이집저집 뛰어다니던 남편은 차창엔 어린 노란 달님에게
늘 이렇게 행복으로 익어가고 있다고 자랑질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비로 익어가던 새벽을 지나 찾아온 다음 날 아침
고장 난 트럭이 오늘따라 말썽입니다
“어이…. 손형 사무실로 가보소, 소장님이
쪼매 보자네“
바람의 발자국을 따라 택배 사무실로 달려 간 남편에게
"이 일은 차가 없으면 못한다는 거 자네도 잘 알고 있제?
내일부터 다른 일을 알아봐래이"
언젠간 주저앉을 줄 알았던 트럭에 앉아 때 이른 저녁까지 어르신들의
마음에
닿기 위해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며 웃음이 번지던 눈가에서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잠든 휴대전화기를 깨워서인지
"여보…. 오늘
배달할 게 많나 보네예, 아직도 안 오는 것 보니까 예,,,,"
“으응 .. 한집만 더
가면 된다"
이별을 기다리는 새벽처럼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트럭의 문을 열고
걸어서 마지막 배달을 물건을 들고 찾아간 집에서
“슈퍼 아저씨 오늘은 왜 이리 늦었노...” 어제 준 두부는 맛있게 먹었다며
보답으로 내미는 물 한잔에 아픔을 비워낸 얼굴로 돌아서가는 남편의 뒷모습에 창문밖에 걸어둔 달님처럼 웃고 있는
어르신을 보며 더는 택배 일을 할 수 없다는 슬픔보다
오천 원의 행복을 주춧돌 삼아 기뻐할 어르신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슬픔에 젖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6개월 동안 수많은 낮과 밤을 놓쳐버리고 겨우 붙들어 놓은 나만의
새벽을 걸어나간
남편은
“어서 오세요, 얼마나
넣어 드릴까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다시 택배 일을 할거라는 벅찬 희망을 안고 주유소
알바 일을 하는 남편의 녹슨 하루가 마무리되어가던 그때 다가온 택배트럭 한 대
“손님 얼마나 넣어드릴까요?“
“만땅요”
새차를 보며 내심 부러운 듯 요리조리 바라보던 남편은 기름을 넣은
뒤
“결재는 뭐로 하실 건가요?“
대답이 없어 다가간 운전석 유리창엔
“여보... 이 차로
돈 많이 벌어오세요“ 라고 적힌 휜 종이가 운전석 유리창에 도배되어 있는 걸 영문을 모른 채 두 눈만
네모로 뜨고 있는 남편 앞으로 유리창이 내려가더니
“아빠..♩♬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여보................”
“아빠..............”
그랬습니다. 아내가 그동안
부은 적금과 쌍둥이 두 딸까지 인형 눈알을 붙이는 부업을 함께해 모은 돈으로 새 차를 뽑아 찾아온 것이었는데요.
“여보.. .이차가 당신차라예”
“진짜?”
등 돌린 행복이 찾아온 것일까?
“달동네 어르신들이 당신 오기를 얼마나 기다리는 줄 암미꺼 퍼떡
가입시더“
“고……. 고.......”
손가이버.... 슈퍼
아저씨라 불러주는 그곳으로 오천 원의 행복을 싣고 우리 가족은 끝없이 펼쳐진 길을 달려나가고 있었습니다
희망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신이 주는 선물이란 걸 알아가면서.....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